[인프라 생존기]

[인프라 생존기 #78] "고객이 PM에게 보고했다는데요?" — 전문가의 확인 의무를 저버린 시니어의 비겁한 정당화

기록자 느혜미야 2026. 7. 1. 08:30

[지난 생존기 다시보기]


1. 고해성사인가, 자기합리화인가

시간이 흐르고 고객 담당자가 바뀌면서 진행된 교육 보고 자리. 지난 77편에서 팀장과 PM 사이를 갈라놓았던 '비선 소동'의 전말이 시니어 빌런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변명이 참으로 가관이었습니다.

 

"아니, 그때 내가 고객한테 물어봤다니까요? PM한테 얘기했냐고 하니까 고객이 '네, 이미 보고했어요' 하더라고요. 그래서 난 보고된 줄 믿고 진행한 것뿐이지. 내가 무슨 잘못입니까?"

 

그는 여전히 당당했습니다. 고객이 PM에게 보고했다고 했으니, 자신은 절차를 지킨 것이나 다름없다는 논리였습니다.

2. 엔지니어의 '확인'은 고객의 입이 아닌 '메일'과 '결재'에 있다

인프라 운영에서 **'확인(Verification)'**은 제3자의 전언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PM이 해당 작업을 인지하고 있는지, 리스크는 검토되었는지, 그리고 공식적인 작업 승인이 났는지를 본인이 직접 확인했어야 합니다. 메일 참조 한 줄 넣거나, 메신저 한 번 보내는 그 1분의 수고를 아낀 대가는 조직의 거버넌스 붕괴였습니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만약 작업 중 장애가 터져 PM이 "왜 보고 안 했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을 겁니다. "고객님이 PM님한테 보고했다는데요?" 이것은 책임감이 아니라 **'책임 회피용 밑밥'**일 뿐입니다.

3. 아키텍트의 서늘한 일침: "발을 뺐어야지요"

그의 구구절절한 변명 앞에 저는 참지 않고 입을 열었습니다.

"시니어님, 그럴 거면 전체 공유를 하셨어야지요. 아니면 고객에게 '직접 PM에게 공식적으로 요청하라'고 가이드를 주든가, 그게 안 되면 작업 못 한다고 발을 뺐어야 하는 게 맞는 거 아닙니까?"

 

사무실에는 서늘한 정적이 흘렀습니다. 엔지니어링의 세계에서 "누가 누구한테 말했다더라"는 통신 보안의 기본도 안 된 소리입니다. 11편에서 로그 확인 없이 "다 됐다"고 외치던 그 무책임한 습성이, 이번에는 "고객의 입"을 빌려 더 교묘한 책임 회피로 진화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4. 에필로그: 파수꾼의 직무 유기

성벽을 지키는 파수꾼이 "왕께서 문을 열라고 하셨다"는 지나가는 행인의 말을 듣고 성문을 연다면, 그것은 친절함이 아니라 직무 유기입니다. 반드시 왕의 인장이 찍힌 조서(공식 절차)를 확인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삼가 악을 떠나나 미련한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 (잠언 14:16)

 

방자함은 기술이 부족할 때가 아니라, 절차보다 자신의 편의를 먼저 믿을 때 나타납니다. 78편을 통해 다시금 확인합니다. 고객의 "보고했다"는 말보다, 공식적인 채널의 '전체 공유' 한 줄이 시스템을 지키고 엔지니어를 지키는 유일한 방패라는 것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