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라 생존기]

[인프라의 비극] "서버는 안 보고 엑셀만 본다" – 탁상행정의 끝판왕 (시즌 2-35편)

기록자 느혜미야 2026. 4. 24. 08:30

1. OS 업그레이드의 서막: 대상 선정의 늪

전사적인 OS 업그레이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수백 대의 서버 중 어떤 것을 먼저 내리고 올릴지 결정하는 '우선순위 선정'은 프로젝트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작업이다. 서비스 영향도가 낮은 서버부터, 혹은 현재 이슈가 잦은 장비부터 차례대로 정교한 타임테이블을 짜야 한다. 시니어 빌런은 본인이 다 파악했다며 자신만만하게 리스트를 내밀었다.

2. 현장 없는 데이터, 껍데기뿐인 우선순위

그가 가져온 리스트를 훑어보던 내 눈에 위화감이 포착되었다. 기준과는 전혀 딴판인 서버들이 '최우선 순위'에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 "시니어님, 이 서버는 서비스 영향도가 낮아서 마지막에 들어가기로 한 건데 왜 1순위에 있죠? 그리고 이건 우리가 지금 겪는 커널 이슈랑은 상관도 없는 서버인데요?"

시니어: "아니, 내가 다 확인해 보고 넣은 거야. 그게 맞을걸?"

나: "기준하고 완전히 다르잖아요. [지난번 크론탭 경로도 모르셨던(34편)] 것 생각하면, 이번에도 직접 서버 들어가서 버전이랑 리소스 확인 안 해보신 거 아니에요?"

3. '유체이탈'과 '빛보다 빠른 태세 전환'

추궁이 이어지자 그는 끝까지 자기는 잘했다며 고집을 피웠다. 결국 참다못한 내가 한마디를 던졌다.

나: "시니어님, 지금 당장 서버 들어가서 리얼타임 로그랑 설정값 확인해 보세요. 제가 틀렸나."

마지못해 터미널을 열고 서버에 접속한 시니어 빌런.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그는 방금 전까지 큰소리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너무나 평온한 목소리로 말을 바꿨다.

시니어: "어, 맞네. 확인해보니까 관련이 없는 서버네? 제일 마지막에 두는 게 맞겠네?"

사과 한마디 없이, 마치 자기가 새로 발견한 사실인 양 태연하게 말을 바꾸는 그 뻔뻔함. 그는 결국 남이 준 리스트만 믿고 실제 서버에는 발가락 하나 담그지 않은 채 문서만 예쁘게 꾸미고 있었던 것이다. 엔지니어가 쉘(Shell) 대신 엑셀만 믿고 앉아있는 순간, 현장의 정합성은 그렇게 무너지고 있었다.


📖 오늘의 인프라 묵상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 (잠언 27:23)
 
진정한 관리자는 문서 뒤에 숨지 않는다. 숫자로 기록된 서류보다 현장에서 숨 쉬는 서버의 상태를 먼저 살피는 것이 엔지니어의 본분이다. 직접 확인하지 않은 데이터는 지식이 아니라 독(毒)이 될 뿐이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동료의 신뢰까지 깎아 먹는다.
 
[다음 편 보기] "엑셀 숫자만 맞추면 장땡? 수량 파악 대참사"
 
우선순위 소동이 가라앉기도 전, 팀장님의 OS 업그레이드 대상 수량 파악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시니어 빌런은 금세 "다 했습니다!"라며 당당하게 리포트를 공유합니다.
 
하지만 제가 담당하는 서버 숫자가 이상합니다. 질문을 던지자 돌아오는 건 침묵뿐. "시니어님, 이거 직접 카운트하신 거 맞아요? 왜 제가 아는 숫자랑 다르죠? 용도도 모르는 서버를 왜 그대로 복붙하신 거예요?"
 
검토 없는 공유, 알맹이 없는 복붙 보고서. '숫자 놀이'에 빠진 시니어의 민낯, 36편에서 공개됩니다.
 
👉 [[시즌 2-36편] 예고: "아리송한 용도와 증발한 서버"]